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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하필이면 그날 유난히도 지쳐있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이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그 순간 한 바퀴를 돌아 다시 [가장 보통의 존재]가 흘러 나와도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 못했던 것은. 이런 순간에 이런 음악을 만난 것은 내 인생에 무슨 뜻일까. 이런 이런 큰일이다.

이 앨범을 듣는 방법은 간단하다.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난 이 앨범을 듣는 또 다른 좋은 환경을 안다. 한밤중에 우리집 앞 교회 구석에 있는 싸늘한 벤치에 누워 차가운 밤 공기와 풀내음을 맡고 있으면 어느새 매캐한 담배 냄새의 환각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눈이 밤 하늘에 익숙해지고, 조금 뒤 외계인이 내려와 검지 손가락을 조심스레 내밀어도 무심한듯 시크하게 넘어갈 정도로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플레이 버튼을 눌러도 된다. 그럼 이제 슬픔이 날 데려가.

보통 음반을 사서 처음 들을 때는 가사도, 노래 제목도 보지 않는다. 나름 유추하고 상상해보고 나중에 맞혀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그런데 5번 곡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제목을 봤는데,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이 노래의 제목이 [의외의 사실]이라니. 더럽게 평범하고 보통인 나는 이 더럽게 이상한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그것이 전혀 의외의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감정결핍. 결벽증. 줄담배. 바닥 모를 애증. 한숨. 난 왜 계속 이런 단어가 떠올랐을까. 이러면 안되겠다, 이러면 오늘은 잠도 못 자고 밤 새 고생하겠다 싶어서 밤 열한시 반에 초코바를 하나 사먹었다. 멜라민? 그런거 몰라. 우걱우걱 씹으면서 생각했다. 이미 악마가 되어버린 내겐 아직도 왜 연락이 없을까.

by 루모스 | 2008/10/10 11:56 | 비뚤어진 시선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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