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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걸어도 걸어도>

 
안국역 시네코드 선재를 찾은건 6년만이었다. 그때도 같은 이름이었으려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낯선 동네가 무채색으로만 보이더니 극장 앞 네거리에서 어딘가 눈에 익은 구멍가게를 발견하곤 그제서야 예전 빛깔이 조금 떠올랐다.

6년 전 메이데이에 우리는 대학로에서 시청으로 행진하는 대열에서 빠져나와 노동자를 다룬 독립영화를 보러 갔었다. 대학 초년생이었던 난 지금보다 좀 더 뜨거웠고, 저기서 무리지어 걷고 있는 사람들보다 뭔가 격조 높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몸이 달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밖에 나오진 않지만, 그 소소하고 심심한 영화들을 보고있는 내 자신이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고 길가에 앉아 한참 수다를 떨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극장으로 들어갔다. 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계획이 없다가 얼결에 보게 된 영화라, 같이 보자고 한 친구 얼굴 보기 민망하지 않게 그저 졸지만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다른 친구가 자기만의 비법이라며 술을 조금 마시면 어떤 영화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길래 구멍가게에서 맥주도 각자 한 캔씩 샀다.

영화가 시작하자 아베 히로시의 얼굴이 보였다. 일본 배우는 잘 모르지만 얼마전 우연히 티비에서 본 <결혼 못하는 남자> 일본판에서 주인공으로 나온지라 낯이 익었다. 평범하고 멀쩡한 캐릭터인듯 싶었는데 왠지 <결못남>의 이미지가 겹쳐보여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이거 출발부터 느낌이 좋다.



<걸어도 걸어도>는 하이쿠, 일본식 밥상, 분재와 아담한 정원을 닮은, 어디 하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영화다. 여느 영화에 으레 덕지덕지 뻗어있기 마련인 잔가지들을 공들여 손질한 감독의 정원사적 공력이 돋보인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마지막에 나오는 주인공의 나레이션이 사족같아서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이것이 일본 영화 특유의 마지막 요점정리 및 교훈 전달의 변용인가 싶어 조금 웃었을 뿐 이해 못 해줄 정도는 아니었다.)


구조는 잘 짜여있으되 서사는 빡빡하지 않고 여유롭다. 별다른 사건도 돌출된 장면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시나브로 없이 관객들의 감정를 끌어당기는 솜씨가 대단하다. 처음에는 마치 볕 드는 마루에 드러누워 식구들을 무심하게 지켜보는 게으른 고양이가 된 듯한 기분으로 보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그 가족의 한 사람처럼 한껏 몰입한채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나를 발견하는 기분은 정말 특별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에 대해 아무리 써봐도 써봐도 이동진기자의 평보다 나은 문장이 나오지 않아서 링크로 대체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63&aid=0000000372



서늘하고 어두운 부분을 허허로운 웃음과 한가로운 일상 속에 애써 묻어두는 가족의 모습이지만 그런 것들까지도 내겐 너무나 따스하게 다가왔다. 끝까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온전히 감싸안지 않아도, 다들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여느 가족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7천원을 주고 본 이 영화가 집으로 가는 7만원짜리 비행기표만큼이나 값지게 다가왔다. 문득, 집에 가고 싶다.

by 루모스 | 2009/08/07 11:09 | 비뚤어진 시선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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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ahier at 2009/08/10 04:52
최근 본 영화 중에서 최고였지요. 역시 고레에다..
Commented by 루모스 at 2009/08/10 15:09
전혀 몰랐던 감독의 지난 영화 모두가 궁금해질 정도로 괜찮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cahier at 2009/08/10 19:41
원더풀 라이프(=애프터 라이프) 정말 강추에요. ^^ 오래 전에 나왔지만... 그 따스함은..
Commented by 루모스 at 2009/08/11 10:30
추천 감사드려요^^ 꼭 찾아서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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